♪ 나의 이야기

유어스테이지에 올렸던 글 14편[2013~2017년]

성영신 심연 2019. 1. 9. 15:21

-https://www.yourstage.com/

유어스테이지라는 사이트가  10여년동안 시니어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었는데 사이트를 닫기로했다고 한다. 그곳에 올렸던 글을 이곳에 모아봤다.

 

제목: 고령자라는 이름 (13.2.8)

서울 유수의 구청에서 2002년부터 구민 정보화 교육을 담당하다가 노령이라는 이유로 자원봉사를 잘리고 나니, 과연 내가 벌써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에도 나이 제한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벼락 맞은 기분입니다.

 

건강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나이 먹은 분들이 대부분 본인의 나이를 잊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마음만은 늘 청춘인 채로 육체가 시들어간다고 할까요? 그 사실을 사진을 찍어서 보면 대번 알 수 있는 것을 본인은 자신이 늘 청춘인 줄 착각을 합니다. 젊은이 못지않게 일을 할 수 있어도,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넌 나이가 먹어서 안 돼 하고 점찍어 버리면 그때부터 갑자기 나이를 먹어버립니다.

난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남이 나의 나이를 인식시키고 판단하네요.

 

우리나라는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부족한데다가 노령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니, 가정이나 사회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더불어 일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제는 선거 시에만 유효한 듯합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공직자나 각 기업이나 단체 우두머리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여전히 노령 인구의 희망은 사라지겠지요. 무언가 할 일을 찾아도 서비스직 이외의 전문적인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네요. 우리 고령자들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사전(死前) 의료의향서 (13.3.8)

요즈음은 의학의 발달로 예전에 비해 남녀 공히 생명의 연장으로 꽤 장수하고 있다. 그러나 장수(長壽)한다고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장수를 해야 하는데, 오래 살다 보면 육체를 건강한 상태로 그렇게 오래 유지하기도 어렵고 병이라도 날라치면 그 또한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기 일쑤다.

 

생명이 연장되면서 아픈 고령자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아픈 본인도 어렵지만, 주위에 있는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만만치 않게 본의 아닌 폐를 끼치게 된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을 연장하려 들 때는 온 집안에 먹구름이 닥쳐서 모든 가족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연히 '사전 의료 의향서'라는 것이 있어서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동의(?)하에 작성하여 사전 의료 의향서 실천모임으로 보내서 공증(?)을 받아놓으면 본의 아니게 줄을 줄줄이 달고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치료비를 아끼기 위한 차원은 아니고, 어차피 죽을 바에야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품위 있게 죽기 위한 것이라고 할까.

 

사전 의료 의향서를 활용하는 병원도 수십 개로 늘고 있다고 한다. 본인 역시 사전 의료 의향서 실천모임에 서류를 신청하고 3개월이나 걸려서 받아놓고도 아직 보내지는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 그 서류를 제출하고 활용해야 하는 당사자도 함께 작성하고 사인도 해야 효력이 있다고 한다. 아직은 자식이 동의를 하지 않아서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우선인 것 같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I love you 라는 말 (13.3.21)

어느 정신지체장애아의 엄마가 "나같이 못생긴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예쁜 ○○를 낳았을까"하는 말에 나 자신이 깜짝 놀라게 되었다. 엄마는 오히려 미모에 속해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그 아이는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눈도 나빠서 알이 굵은 안경을 끼고 있고, 주위는 산만하고 집중력도 없으며, 습관적으로 다리를 떨고 옆에 있으면 무언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에게 콩깍지가 끼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격려하면서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내 맘 속에까지 와 닿는 점이 있었다. 나 자신은 자식에게 크게 바라는 것은 없지만 욕심에 차지 않아서인지 칭찬에 무척 인색한 편이다.

 

'칭찬은 산도 움직인다'라는 말이 있고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상태는 같다고 한다.

그 엄마라고 요즈음의 미모 강조 시대에 자기 딸의 객관적인 외모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외모를 칭찬하는 것만큼 아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우리 집 딸아이의 경우 제 아버지가 무심코 살 좀 빼고 외모에 신경 좀 쓰라고 말했다가 거의 1년 동안이나 말도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물론 살을 빼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겠지만 그 정도로 청소년들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요즈음의 청소년들은 모두 예쁜 외모를 타고났는지 미운 아이도 드물고, 또 외모에 엄청난 신경을 쓸뿐 아니라 자기의 외모에 대해 누군가가 부정적으로 말했다가는 또한 대단한 실의를 느끼는 게 당연한 것 같다. 물론 젊은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깔끔한 외모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만 요즈음은 너무 외모 중심주의다.

 

그 결과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쓸데없이 없는 미모를 칭찬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정도의 칭찬은 또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앞서의 정신지체 장애아의 엄마처럼 우리 자녀에게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아 당신 멋져" "우리 딸내미 아주 예쁜데..."하고 칭찬을 아끼지 말고 자신감을 심어주자! 칭찬을 하는 바로 그것이 결국은 "I love you!"라는 고백이 아닐까.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죽음이라는 것! (13.4.4)

죽음, 이 말은 참으로 위대한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단 한 가지 필연의 법칙에 의해 생을 강제 받은 존재이다. 그것은 바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여지없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매우 비극적인 필연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는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절대로 그 30분 동안에 헛된 짓이나 어리석은 짓, 특히 나쁜 짓을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과 당신 사이에 가로놓인 세월이 50년이 된다고 해도 그 50년은 결국 30분과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의 문을 여는 지혜>> -톨스토이-

 

다정하게 지내던 사람이 죽음에 직면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이별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임종의 생리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를 목격하면 죽음의 원인에는 상관없이 죽음의 무서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깊다. 그리고 인간이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고 저승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므로 죽음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은 무상하므로(諸行無常)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멸하고(生者必滅),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會者定離)는 것이 시간의 근본적 성격이다.

 

이 시간의 성격이 철저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절실한 소망으로부터 사생관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현실의 육체적 생명이 연속되기를 바라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이별 ·비탄 ·공포 ·불안 등은 살아남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 갖는 체험이지 결코 죽은 사람 자신의 체험 그 자체는 아니다. 이런 뜻에서 삶에 있어서 죽음은 여전히 완전한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는 삶에 대한 강력한 집착이 있다. 따라서 생자(生者)는 반드시 죽고, 오는 자는 반드시 떠나게 마련인 것이다.

 

언젠가는 자기도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역시 불안 ·공포 ·슬픔에 찬 사실로서 죽음을 대하는 것이다. 이미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철학적 또는 종교적 현상으로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인간에 대해서나 중대한 의미로 자각된 것은 그 때문이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우리 시니어들은 늘 마음속 깊이 죽음을 준비하여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겠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치매초기는 치료가 가능하다 (13.4.17)

72세이신 민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쓰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쓰러지기 전 가끔 눈앞에서 검은 점이 왔다 갔다 했지만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잠시 누어서 쉬곤 했다고 한다. 쓰러진 후에도 가족들은 연세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 중이었는데 얼마 후 깨어나서 다행이라 여겼다.

 

민 선생님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마침 구()에 설치된 치매연구소를 찾아서 정밀 검사를 해봤더니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매가 자연스레 때가 되어 찾아왔는지 쓰러진 후, 그 후유증으로 왔는지 모르지만, 치매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난감했다.

 

한번 시작되면 억제는 할 수 있어도 낫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도 못 알아본다는 치매에 대해 무서움을 느꼈다. 하지만 의료진의 권유로 치매 초기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6개월간 치료를 받고, 지금은 완쾌되어 컴퓨터도 배우러 다닌다.

 

얼마 전에 친했던 친구 하나가 치매가 와서 자식도, 친구인 자기도 몰라보는데 무척 충격을 받은 바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심한 운동은 못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신체와 정신을 적당히 쓰고 있다. 그리고 차츰 주위를 정리하고 죽음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늘 바라는 바는 잠자듯이 죽음이 찾아와서 가족에게 부담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서울대 의과대학 서유헌 교수 연구팀이 치매유발유전자를 세계최초로 발견했다고 하는데 임상시험을 거쳐서 빨리 치료제가 개발되기를 바라고 있다. 치매를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음과 같이 73을 지키고 있다.

 

7: 1. 적절히 많이 읽고, 쓰고, 말하라(머리를 쓰라)

          2. 손을 정밀하게 많이 사용하고 많이 움직여라(손은 운동중추 신경의 1/3을 차지)

          3. 사회, 봉사 활동을 많이 하라.

4. 많이 씹으라.(30번 이상) 기억력 상승(5감을 훈련하라)

5.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자.(긍정, 적극, 낙관적 사고를 하면 신경전달물질이 잘나온다.)

6. 충분한 휴식과 수면, 균형 있는 영양 섭취

7. 좌뇌 (논리적 사고)뿐만 아니라 우뇌(감정, 이미지)도 많이 쓰라

 

3: 1. 스트레스를 이완하고 극복하라

2. 뇌 손상을 피하라

3. 알코올, 담배, 불필요한 약물 피하고 생활 습관병 (고혈압, 당뇨, 비만)을 조심하라

 

결론:

Mental Activity ->머리()의 활성화

Physical Activity -> 신체적 자극을 활용하여 뇌를 활성화

Social Activity -> 사회와 이웃에 관심을 갖는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신경전달물질 생성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식물도 사랑이 필요하다 (13.5.9)

어머니 바로 위의 이모가 한 분 계셨다. 지금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는 안 계시지만,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 초목들이 파랗게 우거져갈 때면 그 이모님이 자연스레 떠 오르게 된다.

 

6·25 사변 시에 시골의 전매청장이던 남편을 빨갱이(?)에게 보고 있는 눈앞에서 총살당해 잃고, 12녀를 혼자서 사업을 하면서 억척같이 키워내셔서 외모에도 강한 면모가 드러나서인지 여고 시절에 가끔 뵙게 되면 엄격하신 것도 같고 무서워서 어쩐지 접근이 어려우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 이모님 댁에 가보면 그 집에서 자라는 나무나 화초들이 진초록으로 잎이 무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집과 똑같은 꽃나무들이 우리 집에서는 비실비실한데 이모님 댁의 꽃들은 활짝 피어서 온통 꽃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이상했지만 감히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모님 댁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모님은 죽 놓여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시면서 화초의 잎을 일일이 쓰다듬으면서 "아이구~ 예쁘구나! 이런 뜨물이 끼었나?아냐 아냐 괜찮네그런데" 등등 마당의 그 많은 화초들에 물을 다 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하시는 거였다.

 

그 당시에는 화초에 말을 하는 이모님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고 그 이유를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었나 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모습이 더욱 뇌리에서 점점 새로워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깨닫게 된 것은 나무도 화초도 바로 물보다도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화초나 나무에 음악을 틀어주면 더 잘 자란다는 것은 임상실헙에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모님께서는 자녀를 키우는 맘과 같은 마음으로 화초도 그렇게 키우지 않으셨을까?

 

나도 점점 늙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이모님의 외로움과 한을 나무와 화초를 가꾸는데 온정성을 쏟으면서 날려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주변 인척들 뿐 아니라 친구들도 하나 둘 가고 있으니 이제야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간다고나 할까!

 

말을 배우기 전 신생아는 이 세상 이치(?)를 알고 있지만, 말을 배우는 순간 모두 잃어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석양 무렵이니 죽기 전에 다시 신생아로 돌아가 제발 인생의 이치를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동유럽과 발칸여행 (13.5.10)

20131월 말경에 동유럽 4개국과 발칸 2개국을 패키지로 여행한 적이 있다. 시차는 8시간 이상이며 지구의 거의 반대쪽까지 가서 여러 나라의 풍물과 음식을 맛보았다. 그 나라의 교육이나 깊이 있는 문화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안내자의 말대로 이해를 한다면 유럽은 역사나 문화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깊이가 있고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여기저기 역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고성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유료화하여 보존 경비로 쓴다고 한다. 어느 성당은 300년 동안 아직도 수리 보수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에 어두워졌을 때 거리를 걷다 보면 멀리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고 꼭 우리나라의 어느 골목에 와 있는 것 같은 친근감이 느껴진 것은 아마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와 전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인 흔적들이 어느 정도로 잘 보존되었느냐 하면 2차 대전시 폭격당한 잔해들을 옛날 모습대로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요란스럽게 높이 올라간 건물들보다는 나지막하고 무게 있는 건물들이 대부분이어서 도시 전체의 모습들이 친근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인지 고궁이나 민속촌 등 정해진 장소만 옛 건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인 반면 유럽 국가들은 도시 자체가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동유럽과 비교가 되는 것이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이 가벼워 보이고, 동양적인 전통보다는 마천루 같은 건물들이 판치는 모습이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편리성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후세들에게 전통성을 물려주는 데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보고 배워야 하는가 보다. 넓은 안목을 키우기 위해 여행을 하고 견문을 넓혀서 우리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역시 우리나라가 살기에는 최고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나라이니 당연지사이겠지만, 그런 장점들을, 우리나라의 좋은 점들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곳이, 우리 집이 좋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닐까!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죽음에 대한 자각 (13.11.18)

다정하게 지내던 사람이 죽음에 직면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이별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임종의 생리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를 목격하면 죽음의 원인에는 상관없이 죽음의 무서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깊다. 그리고 인간이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고 저승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므로 죽음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은 무상하므로(諸行無常)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멸하고(生者必滅),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會者定離)는 것이 시간의 근본적 성격이다.

 

이 시간의 성격이 철저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절실한 소망으로부터 사생관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현실의 육체적 생명이 연속되기를 바라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이별 ·비탄 ·공포 ·불안 등은 살아남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 갖는 체험이지 결코 죽은 사람 자신의 체험 그 자체는 아니다. 이런 뜻에서 삶에 있어서 죽음은 여전히 완전한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는 삶에 대한 강력한 집착이 있다. 따라서 생자(生者)는 반드시 죽고, 오는 자는 반드시 떠나게 마련인 것이다.

 

언젠가는 자기도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역시 불안 ·공포 ·슬픔에 찬 사실로서 죽음을 대하는 것이다. 이미 죽음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철학적 또는 종교적 현상으로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인간에 대해서나 중대한 의미로 자각된 것은 그 때문이다.

 

'Death' 이 말은 참으로 위대한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단 한 가지 필연의 법칙에 의해 생을 강제 받은 존재이다. 그것은 바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여지없이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매우 비극적인 필연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언젠가 죽는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든 생활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30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절대로 그 30분 동안에 헛된 짓이나 어리석은 짓, 특히 나쁜 짓을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과 당신 사이에 가로놓인 세월이 50년이 된다고 해도 그 50년은 결국 30분과 같은 것이 아닐까? <마음의 문을 여는 지혜>-톨스토이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정도(正道)를 걷는일 (13.12.26)

나의 지인 중에 회사를 정년퇴임 하고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택시기사를 하는 분이 있다. 밤에는 눈도 어둡고 무리하다면서 새벽 2시 반 경에 나가서 낮 두시반경까지 무려 12시간을 서울시내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닌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면서 몹시 언짢아하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서울 송파구 오륜동의 선수촌 아파트라 하면 꽤 잘 사는 동네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그 아파트에 사는 한 아가씨가 택시를 타고 약 1만 원 미만의 거리를 와서는 돈이 없다면서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고 하고 가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여러 번 당하고서도 주민등록증을 놓고 가라든지, 다른 물건을 담보로 놓고 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단다. 언젠가는 세 명의 젊은이가 타고서 모두 돈이 없다고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면서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고 한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일이 모두 끝날 때까지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워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 기분이 다음날까지도 이어진다고 한다. 나 역시 의외로 느껴진 것이 택시는 서비스업의 일종이니 늘 기사들에게만 서비스를 강요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돈이 없으면 택시를 타지 않으면 간단할 것을 그것으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기사들을 그런 식으로 골탕먹이는 사람이 있다니 시민의식에도 문제가 있고, 그런 사람들이 과연 민주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택시 기사도 승차거부하지 말고, 안전하게 고객을 모셔야 함은 당연하다.

 

고객은 고객으로서 사용료를 지불하고 서로 낯 붉히는 일이 없어야 인간으로서 정도가 아닐까? 밥 먹고 밥값을 내지 않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렇게 늘 행하는 일에서 정도를 걷지 못한대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잘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택시기사가, 또 모든 택시 손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욕하기 전에 서로가 지킬 것을 지킨다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그 누구의 짐도 되기 싫어요 (14.6.26)

이제 나이 70을 넘으니 知人의 부고를 받으면 내 나이와 속으로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내 나이보다 적으면 '저런...'하면서도 한편 나도 가까워졌구나 싶다. 내 나이보다 많으면 '나도 앞으로 몇 년 안 남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현재 그대로의 상태에서 헤아려지는 것뿐이다.

201312월 말쯤 먹은 것이 약간 체한 것 같으면서 몹시 어지럼증이 심해져서 누워서도 돌아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제는 죽는구나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 덕이 많은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가지고 있었다니 보통 인간인 나야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암튼 4일쯤 후 검진을 받으러 종합병원에 갔다. 외래에서 소화기 내과를 찾았더니 나이 먹은 사람이 어지러운 건 십중팔구 소화 탓보다는 머리 탓이란다. 의사의 권유로 생전 처음 MRIMRA를 찍어보았다. 결과 뇌의 굴곡은 50인데 모세혈관이 많이 줄어들어 있는 노화현상이란다.

 

피가 돌다가 부족한 혈관으로 인해 막히게 되면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 가능성이 크다면서 뇌혈관 질환계 약과 혈전억제제 약을 처방해주어 6개월째 열심히 복용 중이다. 언제까지 이 약들을 먹어야 하느냐고 우문(?)을 던졌더니 뇌졸중이 무서우니 그냥 계속 먹으란다. 뇌를 쓰는 일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는데 많은 독서량과 끊임없는 탐구도 결국 늙음 앞에서는 당할 수 없는가보다.

 

나이를 먹으면 정말 해야 할 일들이 오히려 많다. 자식들도 챙겨야지, 추하게 늙지 말고 주변의 모범이 되려고도 노력해야지, 운동도 게을리 말고 신체도 건강하게 지켜야지...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인생의 종점에서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는 삶이 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노력해야 한다는 명제가 남아 있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안전 불감증에 대하여 (14.11.12)

대한민국 서울은 면적대비 인구도 많고 더불어 사회기반 시설이나 교통문제 전반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세월호 같은 재난사고도 어찌 보면 안전 불감증에서 촉발되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버린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아파트 붕괴사고, 싱크홀 문제, 산사태 등 자연재해에다가, 요즈음은 의료사고까지... 일반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는 없어도 산업재해도 끊임없이 발생한다고 한다. 거의 하루도 사고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무슨 사고소식을 접하게 되면 '또 야?'라고 반문하면서도 내 주변이 아니면, 내 가족이 아니면 우야무야 바쁜 생활에 묻혀 잊히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기회가 되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광나루 안전체험관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안전에 대처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 시설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서울에는 보라매와 광나루 두 군데가 있어서 대게 초중등 학생들이 방문하여 체험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설 자체가 두 군데밖에 없어서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대로 화재 시 높은 건물에서 타고 내려오는 완강기, 흔히 보이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사용하기 어려운 소화기 사용법, 태풍에 대처하는 태풍체험, 지진체험 등 실제로 실험실에서 체험도 가능하고 영상으로 감상할 수도 있게 운영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가끔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제세동기 사용법을 응급 처치실에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요령을 실습해 보는 것이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응급 시 대처할 수 없으니 정말 요긴한 재난 대처능력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2003년 개관 이후 10년 동안 160만여 명의 시민에게 교육을 시행하였으나 이 숫자는 사실 안전 발생 건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정도다. 더 많은 사람이, 시민들이 안전교육을 받아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은 제하고, 인간의 실수로, 안전 불감증으로 발생하는 사고는 줄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요즈음은 직장 간 딸애가 연락 없이 늦게 들어와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 싱크홀에 빠진 거 아니지?" 반 농담 삼아 문자를 보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제발 사고로 희생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살다가 제 명대로 죽는 세상이 오기를 빌어본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여행이 좋다 (15.9.4)

어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길 '다리가 떨릴 때 여행을 다니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다녀라' 라고 하셨다고 한다. 또 어느 분께서는 '여행이란 내 집이 좋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해도 결국에는 집으로 당연히 돌아오고, 또 긴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집으로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사실 여행을 다녀와서 편하게 집에서 다리 뻗고 누울 때는 이게 내게 주어진 행복이라고 느끼기까지 한다. 여행하는 중에는 머리가 복잡하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고, 다른 곳에 사는 여러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시야가 넓어져서 내 괴로움을 가볍게 여기게도 된다. 일단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조금 더 있다가는 곧 다리가 떨릴 때가 올 것 같아서 올해는 스페인으로, 포르투갈로, 중국의 청도와 상하이, 베트남, 이번에는 일본의 후쿠오카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중국이 무섭게 경제적인 성장을 한다고 하지만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상하이를 가보니 우리보다 경제 성장이 20년 뒤에 출발한 나라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단 외관이 많이 발전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지만 정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는 곳마다 온천이 있고, 음식이나 문화가 비슷한 것이 많아서 유럽같이 먼 나라들보다는 여러 가지로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가 있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아서 되도록 절약하는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시야를 넓히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 되도록 많은 여행을 하면 좋겠다. 나이 먹어서 가는 여행은 자유여행은 어렵고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로 가는 것이 오히려 편리한 것도 같다. 젊어서 배낭여행 한번 가보지 못한 처지라서 뒤늦게 가는 여행이라도 경제가 허락하는 한 맘껏 해야겠다.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남을 배려한다는 것 (16.7.24)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어느 방송사에서는 캐치프레이즈로 화면에 띄워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남을 배려한다는 것인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또 방법을 안다 해도 말하기가 쉽지 내가 몸소 실행하기는 어렵다.

 

나는 차선을 바꿔도 남이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것이 참기 어렵다. 공공장소나 가게, 은행 등에서 내가 문을 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양해도 없이 들어오는 경우는 흔히 당하는 일이다. 부딪히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새치기하기, 지하철에서 내리면 타기 순서 안 지키기, 내 집만 깨끗하면 문밖이야 더럽든 말든 관심 없는 등 예를 들자면 많다.

 

길가 하수구의 배수관을 들여다보면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이것이 빗물에 강으로 흘러들어 가면 니코틴은 화학물질이라서 정수가 어렵다고 한다. 길가 화단에도 '나는 재떨이가 아니에요.' 하고 팻말을 붙여놨음에도 불구하고 꽁초를 화분 흙 속에 꽂아놓는다.

 

그 이외에 우리가 잘 지키지 못하는, 지키지 않는 여러 가지 환경오염이나 수질오염이 결국은 내게로 다시 나쁜 결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곤 한다. 그나마 요즈음엔 곳곳에 설치된 CCTV 덕분에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강제성은 없다고 한다.

 

결국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이것이 습관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내 집에서 내가 떠드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마음가짐이라면 층간소음으로 생기는 시비가 생기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먼저 남을 배려해야 결국 나도 남에게 배려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제목: 확고한 노년관(老年觀) 갖기 (17.8.2)

인간 수명이 100세라고 하지만 꼭 백 세에 죽는 것도 아니고 100세를 넘겨서 사는 것도 사실은 드문 일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돈이 많은 부자나 가난한 이나 유명인이나 일반인이나 죽음 앞에서는 인간의 숙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죽음을 피해 보려고, 혹은 삶을 되도록 연장하려고 발버둥 쳐 온 것이 사실이다.

 

나이가 먹고 몸이 예전과 같지 않아지면 겁부터 나고 병원 출입이 잦아지는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그려낸 문제작을 발표했던 소설가 박경리 씨는 2008년에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역시 범인(凡人)과는 달라서인지 해탈의 경지까지 느껴진다.

 

또한, 소설가 박완서 씨도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위의 두 분은 물처럼 살다 간 대표적인 분들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그 글 속에서 인생과 사랑을 말했던 분들이었다. 말년의 두 분은 노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나이 먹어야 한다고 아무 말 없이 조용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박경리 씨는 원주의 산골에서, 박완서 씨는 구리 아치울 마을에서 흙을 파고 나무를 가꾸면서 빛나는 노년의 침묵을 가르쳐 주었다. 노년의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말해주었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세상뿐이다. 더러는 조금 짧게 살다가, 더러는 조금 길게 살다가 우리는 가야 할 곳으로 떠나간다. 두 분의 삶을 바라보면 이 소중한 시간을 이해하면서 살라고, 배려하면서 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을 지난날을 돌이키며 후회하기보다는 남은 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과 행복을 찾아보자고 다독여 주는 것 같다.

 

두 분의 삶에서 우리는 노년의 삶의 방향을 배우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조차 고마움을 느끼는 일상. 조그만 일에 끊임없이 감사함을 느끼는 노년. 그렇게 넉넉한 마음의 행복을 배우라고 우리를 일깨워주는 바를 받아들이면 더 후회 없이,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시니어리포터 성영신>

 

 

*15번째로 올리려던 글

제목: 늙을수록 일을 해야한다

교직과 학원등...교사생활을 30여년 넘게 하다보니 늘 나는 지금도 교사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구청에서 55세이상 어르신들 컴퓨터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데 40세미만의 나이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신청서를 작성해서 신청을 했다.

물론 꺼려하는 담당자를 설득해서 시작한것이 2015년까지 12년여를 컴퓨터 강사로 지내왔고, 거의 같은시기에 정보통신부에서 교육장으로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 1~2급자들을 위한 컴퓨터 방문강사 모집에도 신청하여 아직까지도 방문교육을 하고 있다.

물론 두가지를 통해 약간의 수고비는 받지만 모두 자원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무언가 일거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구청에 속해있는 혹은 구청에서 지원하는 자원봉사 센터에서 봉사자로 지원을 해도 잡다한 일거리외에 전문직으로써 봉사하는 일은 한정이 되어있고 마땅히 할일이 별로 없다.

 

교직을 천직이라 여겼기에 2000년에 직업상담사1회 시험에 도전하여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것도 교사로써 청소년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도전을 했었는데 막상 자격이 주어져도 할수 있는 일거리(?)가 없었다.

2000년대까지 서울시에서 실시하던 시민인터넷교실이 행정자치가 시작되면서 구청에서 실시하게 되어 갑자기 IT 자격증을 소지한 강사가 필요하게 된것이다. 다행히 직업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컴퓨터 자격증을 몇개 소지하다보니 그나마 강사가 될수 있었던것 같다.

이 일도 10년이 넘어 학생들인 어르신들 보다 나이가 많다보니 젊은 강사들에게만 의지하려는 교육생들도 생기고 구청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은 노인들을 싫어한다.

특히 컴퓨터는 젊은이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시니어들도 있다. 물론 극소수지만 '왜 나이 먹은 사람한테 컴퓨터를 배우느냐'고 구청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 강의를 들어본 시니어들은 대체로 교직경험이 있다고 인지하고 젊은 강사들하고는 다른 설득력과 지식이 묻어난다고 호평하면서 감사를 표하는 분들도 많다.

요즘도 구내 지하철에서 교육생들이셨던 분들을 만나면 여전히 기억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근황을 묻는다.

메일과 핸드폰 문자로 새해나 명절에 안부를 전하는 분들이 갑자기 소식이 뜸해지면 먼저 걱정이 앞선다. 혹시 건강이 나빠진건 아닌지 무슨 일이나 생긴건 아닌지...

본인이 불치병에 걸렸다면서 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참 어쩔수 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12년 동안을 구청 컴교육을 했지만 어떻게 세월이 가는지 참으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고 나 자신도 인생공부를 많이한 세월이었다.

교사는 늘 가르치면서 배우는 직업이다.

 

장애인들의 IT 교육은 시니어들 보다는 더 다양하다. 연령층이 다양해서 수요층 또한 다양하기 때문인데 사회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은 자격증 취득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신학대학교에서도 컴퓨터 자격증 두개를 필수로 취득해야 졸업이 되고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들도 자격증 1~3개가 필수다.

장애인들 또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시니어를 반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이주어지면 계속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