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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Ⅰ] 문학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성영신 심연 2015. 5. 23. 10:13

[Ⅰ] 문학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 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한바 있다. 2차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1980년에 파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60년대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지금은 멀어져버린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신화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나라,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본질이 더 잘 보이는 듯한 그 나라.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의 원인은 체코에 있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밀란 쿤데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지혜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생은 다른 곳에』『불멸』『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별』『느림』『정체성』『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78년에 출간된 『이별』은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문학상 프레미오 레테라리오 몬델로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별』은 현대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우리의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최근 작품으로는 『향수』와 오늘날 현대 소설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의를 쿤데라만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 『커튼』등이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의 줄거리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4명의 남녀가 주된 인물로 등장하며, 그들의 전 생애에 걸친 사랑이야기를 핵으로 삼고 있다.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여긴 테레자는 무작정 고향을 떠나 토마시를 찾아간다. 토마시는 비에 젖은 채, 자신의 전 생애를 짊어지고 이제 그 무게를 자신에게 지우려고 하는 여자를 문 앞에서 마주하고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다 테레자의 손에 들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발견한 순간, 그는 운명적인 감정에 휩쓸려 테레자를 받아들이고 만다. 토마시는 본래 무겁고 진지한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은 ‘einmal ist keinmal’. 한번 뿐인 것은 없는 것이다. 아들까지 내팽개친 이혼남인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를 갈아치우며 잠자리를 갖는 섹스중독자였다. 섹스는 하되 동침은 하지 않는다는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을 철칙으로 그는 되도록 자신의 공간 안에 여자를 들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비를 심하게 맞아 고열에 시달리는 테레자를 자신의 공간에 들이고, 잠을 재운다. 자리를 떠나려는 그를 붙잡는 테레자의 손에서 토마시는 강물에 떠내려 온 아기를 발견한 심정이 된다. 그의 공간은 강물에 버려져 떠돌던 아기가 도착한 최종지가 된 것이다.

 

 토마시에게 테레자가 우연의 산물이라면, 테레자에게 있어 토마시는 운명이었다. 그녀에게 토마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녀가 일하는 식당에 그가 들어왔고, 자신이 담당하는 테이블에 그가 앉았고, 그녀가 숭배하는 ‘책’을 들고 있었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테레자가 토마시를 만나러 갈 때 그녀의 분신처럼 품에 든 책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였던 것은, 테레자의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필연을 투영하고 있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던 날, 소설의 시작인 기차역에서 한 남자가 기차에 치여 죽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안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테레자에게 있어 삶이란 짜여진 필연인 소설의 구조를 닮았다. 그래서 테레자가 따르는 필연의 피할 수 없는 절대성과같이 그녀가 맺는 관계는 무겁다.

 

  테레자를 사랑하게 되고 나서도 토마시는 테레자가 씌우는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깃털처럼 가벼운 돈 후안은 테레자를 만나고 나서 동정과 연민으로 고통받는 트리스탄이 되었음에도 그는 이전의 가벼움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몇 번이고 테레자는 그의 외도에 분개하고 절규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견디지 못하면서도 그들은 15년을 함께 한다. 보헤미안에서 만나 프라하의 봄을 누렸고, 스위스로 함께 떠났다가 다시 체코로 돌아온다. 삶이 종결되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삶을 함께 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역설할 수 있게 되다. 운명처럼 일회의 '사건’에 의해 시작된 ‘그들의’ 삶이 서로 엉키고 얽매이며 중량을 가지고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러나 저자가 무어라 말했던가. einmal ist keinmal. 한번 뿐인 것은 없는 것이다. 생의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휘날린다.

 

 인류사는 단 한순간도 사랑이라는 담론을 저버린 일이 없다. 커다란 서점 한 켠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소설류의 대부분은 아직도 연애 중이다. 남의 연애사야말로 비길 데 없는 최고의 안줏거리,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주된 화두로 떠오르는 것 역시 그놈의 연애, 연애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려봄직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다루고 있는 내용과 형식만을 놓고 보면 제목을 ‘참을 수 없는 연애의 가벼움’이라고 바꿔도 무방할 성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어야만 한다. 겉보기에는 비록 한 낱 흔하디흔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듯이 보이긴 하지만, 저자가 진정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담론을 도구로 끌어와 개별 인간의 역사와 보편 역사의 교차점을 마련한다.

 

소설을 유심히 살펴보면,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토마시의 삶이 그가 속한 조국의 역사와 나란히 놓여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프라하의 유능한 의사에서 도시 외곽에 위치한 병원의 의사로,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종국에는 시골 트럭 운전수로. 잘나가던 의사였던 토마시가 추락한 것은 그가 기고한 신문 사설의 내용 때문이었다. 체코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일침,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통감해야 하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오이디푸스 왕처럼 자신의 눈을 찔렀던 것처럼 그리해야한다고 말한 것이다. 토마시는 사설에서 내세운 입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은밀하고도 노골적으로 받지만, 그는 자신의 글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쓴 기사의 화두가 된 소포클레스 비극은 소설 초반, 운명처럼 찾아든 테레자가 그에게 환기시켰던 버려진 아기의 신화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일회성과 유한성이라는 가벼움을 숙명처럼 지닌 개별 인간의 역사는 순환과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끝없는 흐름을 보여주는 무한성을 지닌 보편 역사의 담론의 장 안에 유입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저자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가득 차 있는 저자의 글은 철학 서적이 아님에도 독자를 철학하게 만든다. 존재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서양철학에서 ‘존재자체에로의 물음’이 물어진 것의 역사는 길지 않다. 존재라는 것은 이미 주어져 있었고, 다만 존재하고 있는 ‘존재자’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것이 존재자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하는 활동 그것이 이성과 경험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사상의 바탕을 이루고 대척점을 이룬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철학에 있어서 존재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 빠져 있었음을 말한다. 마치 그 물음은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과 현상학자들이 등장한 이래 존재는 그 자체로 다시 질문을 받았다. 존재자의 존재방식에 관하여, ‘있음’이란 무엇인가를 밝혀야만 했던 것이다.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결국 이 존재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그의 소설 첫머리를 니체의 회귀사상으로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p9)

 

 지금 그는 영원한 회귀를 바탕으로 ‘존재’란 무엇인가를 고찰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자신은 이미 서두에서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린 듯 보인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 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p12)

 개별 인간의 역사와 인류 보편의 역사가 교차되는 지점에 사랑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einmal ist keinmal 이라는 일회성과, es muss sein 이라는 영원회귀의 숙명론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장이다. 토마시와 테레자가 그토록 서로에게 얽매이고, 증오하고, 갈망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면서 얽히고설키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이미 그러한 모순의 합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마치 날 것 그대로의 삶을 가공하지 않은 채 낱낱이 열거하고 분석하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대개의 연애소설이 그들의 운명같은 만남, 그리고 뜨겁게 불타오르기까지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마침내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이야말로 행복의 절정이며 그것만이 올바른 결말인 양 떠들어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끊임없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인물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때로 사색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 마침내 우리는 존재에 내려앉는 모든 무게와 동시에 허망함이라는 깃털같은 가벼움에 도달한다. 그래서 저자는 그것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 이름붙인 모양이다.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장으로 시작하여 영혼과 육체, 이해받지 못한 말들, 다시 영혼과 육체, 가벼움과 무거움, 대장정, 그리고 카레닌의 미소라는 장에서 마침내 귀결한다. 삶의 철학이 가벼움과 무거움의 그 어디쯤에 있다면 그 삶이 흘러온 시간은 하나의 대장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레닌의 미소’라는 완결부에는 그토록 회의적이고도 냉소적인, 그럼에도 생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그의 실존철학이 숨겨져 있는 듯 보인다.


‘두 사람은 개를 바라보며 비록 시한부 생명이지만 카레닌이 웃는 동안에는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중얼거렸다’(p454) 작품 도입에서 저자는 영원회귀야 말로 무거움이며, 그것이 곧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생의 일회성은 영원회귀가 잊혀진 지점,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은 유일하고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우리의 생이 비극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찰나의 반짝임들, 그 가벼움들이 만들어내는 행복들 때문에 우리는 생을 이어나갈 수 있다. 존재의 가벼움이 존재의 무거움을 견디게 한다. 역사의 미분에 개별 인간들의 수많은 중첩이 놓여 있다는 사실.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인간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의미 있을 수 있는 이유. 수없이 반복되어 온 생명과 죽음의 연장선 위에 한 점으로 놓여있다는 인식이 우리를 좌절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순간이 유일하다는 인식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 그렇다. 우리의 생에 있어,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그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p484)


 여자는 남자 육체 무게의 물리적인 무거움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한 번의 삶은 비교될 수 없기 때문에 깃털처럼 가볍다. 물에서 떠내려 온 것 같은 테레자의 존재는 토마시에게 너무나 무겁다. 항상 끝이 오기 전에 배신을 해야하는, 떠나야 하는 사비나의 존재는 토마시에게 가볍다. 반면 프란츠에게는 사비나가 너무나 무겁지 않았을까. 유럽의 슬픈 역사 위에 프라하, 제네바 등을 오가며 뒤얽히는 네 남녀의 사랑으로 우리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그리고 ‘유한한 것’과 ‘반복될 수 없는 것’의 가벼움을 읽을 수 있다. 사비나는 선택의 결과가 아닌 것은 실패로 간주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 내리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정의는 다를 것이고, 이를 선택한 것이 야기하는 실패에 대한 책임도 우리가 질 것이다. 유럽의 역사, 네 사람의 사랑, 니체와 밀란 쿤데라의 사상과 철학이 한없이 덧없는 것일까. ‘만약에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같이 역설적인 문장이나 무거움과 가벼움 등의 정 반대의 개념, 외과의사부터 유리창 닦는 노동자의 삶까지 경험하는 주인공 인생의 변화 등이 한 번의 완독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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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글쓴이 : 黃薔(李相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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